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헬름 폰 프로이센 (문단 편집) === 전간기 === [[제1차 세계 대전]] 동안의 수탈로 지친 독일 국민들이 [[독일 11월 혁명]]을 일으키며 독일 제국은 멸망했고 카이저 [[빌헬름 2세]]는 퇴위하였다. 이에 따라 빌헬름도 독일 황태자와 프로이센의 왕세자 직위를 모두 잃었고, 그의 형제자매들과 친척들도 프로이센의 왕족이라는 칭호와 직위를 잃었다. 빌헬름은 아버지와 함께 네덜란드로 망명했다. [[구스타프 슈트레제만]]이 [[바이마르 공화국]]의 총리가 되자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구 왕족들의 독일 귀환을 허락했고 빌헬름은 독일로 돌아올 수 있었다. 물론 이 조건은 지켜지지 않았고 독일로 입국한 빌헬름은 극우파를 지원하는 등 왕정복고 여론을 부채질하게 된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-5px -10px;" [[파일:Adolf_Hitler,_Kronprinz_Wilhelm.jpg|width=100%]]}}}|| || 1933년 [[아돌프 히틀러]]와 악수하는 빌헬름 황태자[* 히틀러 집권 이후 구세대(제국)와 신세대(나치)의 화합을 보여주기 위해 괴벨스의 기획으로 열린 행사 포츠담의 날에 찍힌 사진이다.][* 참고로 히틀러의 키는 175cm로 당시 독일 남성의 평균키(173cm)보다 컸는데, 빌헬름 황태자는 그보다도 훨씬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.][* 재밌는건 빌헬름 황태자의 아들들인 [[루이 페르디난트]]와 프리드리히는 바로 작년인 1932년에 [[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|미국 대선]] [[민주당(미국)|민주당]] 후보이자 제32대 [[미국 대통령]]이 되는 [[프랭클린 D. 루스벨트]]를 만났다.] || 1925년에는 [[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|대선]]에 출마해 대통령이 되어 통령 출신으로 황제가 된 [[나폴레옹]]을 모델로 직접 대통령 출신 황제 컨셉으로 제정을 복고하려고 했지만 네덜란드에 망명한 아버지 빌헬름 2세[* 빌헬름 2세는 본인에게 충실했던 [[파울 폰 힌덴부르크]]를 지지했다.]가 반대하면서 출마가 무산되었다.[* 거기다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이 되면 공화국 충성 서약을 해야 되는데 그 서약을 해놓고 국민투표든 법 개정이든 해서 제정을 부활시키는 건 그 서약을 엎어버리는 것이기에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빌헬름 2세가 보기에도 아들이 전 황태자로서의 자존심도 포기하고 대통령이 되려고 공화국 충성서약을 하겠다는 게 못마땅해 보였을 것이다. 훗날 1968년 아들인 [[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|루이 페르디난트]]도 독일 대통령 후보에 추천되기도 했다. 이쪽은 반대로 본인이 거절했지만.] 대신 이후부터 [[철모단]]에 가입해 [[나치]]를 지지했다.[* 빌헬름 황태자 본인뿐만 아니라 동생 [[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프로이센|아우구스트 빌헬름]]은 [[SA|돌격대]]에까지 자진 가입할 정도로 열렬한 히틀러의 추종자였고, 매제 [[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]]도 후원금을 보내며 나치 인사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고 외조카 [[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]]는 '''[[슈츠슈타펠]]'''에까지 가담한 극렬 나치 지지자였다. 그나마 아버지인 빌헬름 2세가 나치를 불신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나치를 지지한 구 독일 황실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안좋았는지 그리스의 왕비이자, 빌헬름 황태자의 외조카인 [[프리데리케 루이제|하노버의 프리데리케]]는 두고두고 친가와 외가 할 것 없이 일가 친척들이 죄다 나치를 지지했다고 비판받아야만 했다.] 하지만 이 나치를 지지한 전적이 후대에까지 두고두고 발목을 잡혀 왕정 복고는 꿈도 못 꾸게 되고, '''훗날 증손자 [[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|게오르크 프리드리히]]가 현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구 황가 재산 반환 소송에서 계속 빠꾸먹게 되는 원인이 된다.'''[* 독일 정부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소송을 기각한 이유가 전범이거나 전범의 후손이라면 동독 정부에게 빼앗긴 재산을 돌려받지 못하고 정부에 귀속된다는 법률을 근거로 내건 증조부 빌헬름 황태자가 나치와 친하게 지낸 전적 때문이었다.]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빌헬름도 떡고물을 기대했지만 [[장검의 밤]]으로 빌헬름의 친구 [[쿠르트 폰 슐라이허]]가 사살당하며 김칫국만 먹게 된다. 장검의 밤 이후로 군주정 복고주의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고 빌헬름은 모든 정치 활동을 접었다. 1934년 장남 빌헬름과 도로테아의 사이에서 장녀 펠리시타스가 태어나면서 할아버지가 되었다. 빌헬름이 귀천상혼하면서 계승권은 차남 루이 페르디난트에게로 갔다.[* 애초에 빌헬름은 귀천상혼이 아니었어도 딸만 2명을 낳고 아들이 없었고, 근본적으로 1940년 아버지 빌헬름 황태자는 물론 '''할아버지''' 빌헬름 2세보다도 먼저 죽었기 때문에 계승권을 가질 수 없었다. ] 1938년 차남 [[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]] 왕자가 러시아의 [[키라 키릴로브나 여대공]]과 결혼했다. 장남과 달리 동등한 결혼이였으며, 1939년 장손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태어나는것을 보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